수영의 기쁨에 대하여

01 January 2019


올해 여름부터 동네 체육센터에서 아침 수영 수업을 듣고 있다. 그렇게 가기 귀찮은 아침 수영이었는데, 막상 11월에 수영장 공사가 진행되어 못 가게 되니 자면서 수영하는 꿈을 꿀 정도로 그리워졌다. 그 아쉬움에 지금 주절주절 수영하면서 느낀 단상에 대한 글이라도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렸을 때 배웠던 수영의 기억은 생리 주기 걱정이나 때 검사처럼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에 가까웠다. 수영하는 날이면 내 빈약한 몸뚱아리가 더더욱 피로해져서 졸음이 쏟아지는 바람에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 헬스, 필라테스 등의 운동은 해봤어도 수영은 운동 후보로 둔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수영장이 딸린 체육센터가 있었고, 마침 최고조에 오른 여름의 무더위 덕분에 ‘수강 신청’ 버튼을 누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퇴근 후에 운동을 다녀오면 하루가 끝나는 것이 싫어서 반신반의하며 무려 아침 8시 수영 수업을 등록했다. 처음에는 옆 레인에서 돌고래처럼 날아다니는 아주머니들을 보며 ‘나는 언제 저렇게 잘하게 되려나’하는 막막함도 느꼈고,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지금은 아침 수영을 시작한 자신이 자랑스럽다. 어렸을 때 배운 수영의 기억에 오락가락하던 나는 그사이에 잘못된 자유형 영법을 고쳤고, 훨씬 덜 피곤하고 덜 숨이 찬 상태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평영과 접영을 처음으로 배워서 느릿느릿하긴 하지만 앞으로 나갈 수도 있게 되었다!


수영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아침 운동의 뿌듯함

사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수영 수업을 빠진 적이 몇 번 있기에 이 부분을 작성하기가 조금 부끄럽지만… 어쨌든 이번 기회를 통해 아침 운동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하하. 회사의 출근 시간이 10시라 마지막으로 이른 시간에 일어나 본 게 언젠지 까마득한데, 8시에 시작하는 수영 수업에 맞추기 위해서는 최소한 7시 1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수영장에 가는 길에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고, 긴 시간 운동을 하고 나왔는데도 아침이라 이후에 유용할 시간이 많은 것도 좋았다. (수영하는 동안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등 이런저런 생각이 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저녁 운동을 할 때는 약속이 있을 때마다 죄책감을 가슴에 안은 채 운동을 빠져야했는데, 오후 일정에 상관없이 꾸준히 운동을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덤으로 내가 굉장히 부지런하고 실천적인 사람이 된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누군가 운동을 하느냐고 물어볼 때, ‘네, 저 아침에 수영해요’라고 대답해보라. 십중팔구 ‘와, 대단하세요’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

수영을 배우는 것은 걸음마를 새로 배우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본래 땅 위에서 걷기 적합하게 설계된 인간이 굳이 물속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법을 배우겠다고 나서는 것이 수영이다. 팔과 다리를 각각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젓는 힘은 어느 정도 주는 것이 적절한지, 호흡은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야말로 난생처음 겪는 움직임들을 익혀야 한다.

그런데 그 각각의 움직임들을 조합해 반복하면 놀랍게도 물 속에서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 처음 느끼는 그 희열은 걸음마를 처음 배운 아기의 기쁨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마음껏 달리기를 할 때의 가슴이 뚫리는 느낌이나 처음 자전거를 배워서 바퀴를 굴렸을 때의 두근거림을, 수영을 배우면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신체 부위의 움직임을 연습하고 이를 조합하면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게, 꼭 내가 좋아하는 악기를 배우는 일과 닮아있단 생각도 들었다.

앞을 보려 애쓰지 말고, 현재에 집중할 것

자유형을 배울 때 보통 시선을 앞에 두지 말고 바닥을 보라고 한다. 무리해서 앞을 보려고 하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고, 자연스럽게 다리와 몸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처음 바닥을 보며 수영할 때에는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늠이 안 되는 것이 어쩐지 좀 무서워서 가는 중간에 일어나서 멈춰버리곤 했다. 그런데 익숙해지니 바닥을 보며 헤엄치는 게 몸을 유선형으로 만드는 데에 더 도움이 되었고, 몸이 잘 뜨니 힘을 덜 들이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슨 일이든 사실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뭐가 있을지, 또 내가 어디쯤 와 있는건지 언제나 불안하고, 그래서 자꾸만 무리하게 앞을 내다보려고 고개를 든다. 하지만 거기에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는 규칙적으로 숨을 고르고, 배운대로 최선을 다해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된다.

수영은 이렇게 단순하고 현재에 집중하는 운동이다. 평소에 손에서 뗄레야 뗄 수 없던 스마트폰도 수영을 할 때만은 곁에 둘 수 없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게 목표라는 점에서 달리기와 비슷하지만, 주변의 풍경을 둘러볼 여유나 다양한 지형을 넘나드는 버라이어티는 없다. 발레처럼 몸을 움직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헬스처럼 발달시킬 부위에 따라 여러 운동을 오가지도 않는다. 물 속에서 - 몸을 움직여 - 안정적으로 호흡하며 - 앞으로 나아간다는 목표에만 오롯이 집중한다. 놀 때든 일할 때든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게 익숙했던 나에게, 수영은 그렇게 머리를 식히고 내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주었다.


사실 지금은 추운 겨울을 맞아 잠시 수영을 쉬고 다른 운동을 신청한 상태다. 하지만 다시 따뜻한 날씨가 되면 배우다 말았던 접영을 꼭 마스터하고 싶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수영을 시작하는 걸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눈 딱 감고 시도해볼 것을 꼭 추천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나를 옭아매고 있던 업무, 컴퓨터, 스마트폰, 그리고 여러 잡생각으로부터 해방되어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에만 오롯이 집중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