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회고

31 December 2020


2020년 회고를 쓰려고 마음 먹으면서 내가 작년에 썼던 2019년 회고를 읽어봤다. 다시 읽어보니 작년 회고는 대부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고, 무엇을 해보았는지에 대한 리스트를 나열하여 쓴 느낌이 들었다. (다시 보니 지난 3년간의 모든 회고가 그렇다.) 사실 회고를 하는 이유는 메타적으로 내가 한 일을 돌아보며, 좋은 것은 어떻게 더 발전시키고 아쉬웠던 것은 어떻게 개선할지 생각해보기 위함인데, 그런 의미에서 작년의 회고는 회고라기보다는 Wrap-up에 가깝지 않았나 한다.

올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번아웃’이었다. 번아웃을 겪으며 스스로 많이 깨졌고, 가치관의 변화도 겪었다. 많이 힘들고 우울했지만, 동시에 어느 때보다 겸손해지고 야망보다는 순간순간의 행복에 대해 생각을 많이하게 된 한 해였다.

👍 LIKED (좋았던 것)

  •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소중함을 알게 된 것
  • 이직하면서 디자이너로서의 나의 능력치, 강점/약점에 대해 돌아보게 된 것
  • 완전 재택근무에 접어들며 이에 맞게 집안 근무 환경을 세팅한 것
  • 미뤄두었던 치과, 산부인과, 비염 치료를 받은 것
  • 무사히 전세대출과 새 집으로 이사를 마침. 이사한 집이 매우 만족스러움
  • 간헐적으로라도 러닝을 꾸준히 이어온 것
  • 처음으로 5회기 이상의 심리 상담을 받은 것
  • 두고두고 책모임을 꾸준히 참여한 것
  • 러브레이스에서 2가지 스터디를 시작한 것

🥲 LACKED (부족했던 것)

  • 나의 능력치와 일정을 보고 할 수 없는 일을 끊어내는 결단력
  • 100%의 노력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 / 그래보는 경험
  • 뒤에서 불평불만 하지 않고 개선점을 제안하는 용기
  • 다른 사람을 Judging하지 않는 태도
  • 디자이너로서의 비주얼적 능력치 개발

📝 LEARNED (배운 것)

  •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뭐라도 하면 상황은 바뀐다
  • 일에서 오는 성취감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감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왜 원하는지 메타적으로 항상 돌아봐야 한다는 것
  • 내가 가진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면 안된다는 것
  •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한 디자이너라는 것
  • 내 주변에는 나를 무조건으로 응원해주고 실질적으로 내게 도움을 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

🌟 LONGED FOR (바라는 것)

  • 조금 더 너그럽고, 자신감 있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
  •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기준을 둘 것
  • 돈과 성취 외에 다른 인생의 목표를 가질 수 있기를

그 외의 일들

팀 이동

스포카에서 기존에 있었던 신사업 팀이 흩어지게 되어… 팀을 옮겨 백오피스팀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포지션 분담이나 적응이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백오피스만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는게 재미있었다.

두번째 이직

첫 이직이 에이전시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이동이었다면, 이번 이직은 스타트업에서 기업(?)으로의 이직이었다. 재직하는 동안 스포카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내가 그동안 맡았던 제품들의 이미지를 담은 카드를 만들어서 한분한분에게 손편지를 전하고 퇴사했다. 사실 회사를 옮긴 후 재택근무로 입사한 탓에 적응도 어려웠고, 스타트업과 달리 나의 권한이 확 줄어들며 불만인 점도 많았다. 하지만 좋은 분들 덕에 시간이 지나며 잘 적응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로서 내 비주얼 능력의 부족함을 절절히 느껴서 디자인 스킬을 좀 더 갈고 닦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번아웃

이직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진행하던 외주 스케줄이 겹치게 되었고, 본업+포트폴리오+외주+사이드 프로젝트의 4콤보로 컨디션이 작살났다. 또 구직 중 떨어지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기도 했다. 나한테 어떤 제안이나 기회가 온다고 해서 다 하는게 좋은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오히려 다 하려고 하니까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번아웃을 세게 맞은 후 한동안은 모든 욕심을 다 내려놓고 한참 쉬었는데, 요즘에는 다시 이런저런 일을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돈/제테크

작년 회고에도 적었듯이 원래 돈과 제테크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는데, 번아웃이 오고나서 그냥 모든 활동을 쉬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건지 곰곰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내 삶과 생활에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는 장기투자 방식이 내게 맞다고 판단했다. 나는 스릴이나 재미를 느끼기 위해 투자를 하는게 아니라, 안정적인 생활과 노후를 위해 하는 거니까. 인간의 본능이나 뇌의 자극에 이끌려 본말전도가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2020년에 느낀 점을 요약하자면

  • 우리 열심히 살되 불안을 동력으로 자신을 태워버리지는 말자.
  •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돈을 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