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유난히 빠르게 흘러간 한 해였다. 여느 때처럼 모임, 외주, 사이드 프로젝트도 이것저것 했고 9월부터는 회사 내에서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의 디자이너가 되어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 만큼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데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에 2019년에 대한 회고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회사에서 🏢
1. 끝없는 채용 채용…
현재 회사에 들어온 지 1년 반 정도 되었는데, 그 긴 근무 기간 내내 디자이너 채용이 열려있었다. 덕분에 1년 동안 포트폴리오를 검토하고, 캐주얼 미팅을 잡아 회사 자랑을 하고, 면접을 보는 일을 수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원래 내 JD는 아니다 보니 채용 업무가 과도할 때는 정말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돌아보면 개인적으로는 좋은 자양분이 된 것 같다. 일단 내 연차에 그렇게 많은 포트폴리오를 보고 검토할 수 있었던 경험 자체가 행운이었고, 회사는 어떤 지원자를 원하고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채용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음에 내가 이직하기 위해 포트폴리오와 면접을 준비한다면 이 경험을 많이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기획과 매니징 능력이 (강제로) 상승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가 강인하게 성장하는 과정
맨 처음에 언급했듯 9월부터 새로운 프로젝트에 디자이너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해당 프로젝트 팀에는 PM도 기획자도 없었다… (정확히는 채용하려고 했는데 6개월 동안 뽑히지 않았다…) 나와 동료 디자이너를 제외한 다른 실무자들의 포지션은 100% 개발자여서 그나마 업무 연관성이 있는 디자이너가 관련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동안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롤에 기획이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서비스를 바닥부터 기획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PM이 없으니 일정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사람도 정확히 없어서, 동료 디자이너분이 간트 차트를 만들자고 제안해 각자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초반에 ‘그래서 다음 단계에선 우리 무엇을 해야할까요?’라는 질문이 자꾸 디자인팀으로 들어와서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그 과정에서 없는 지식에 책을 읽어가며 유저 스토리 매핑도 진행하고, 유저 인터뷰도 제안하고, 내가 느끼는 문제점에 대해서 계속 문제 제기를 하고, 일정 자체에 대해서 큰 틀을 제안하기도 하고, 프로젝트 회고도 진행하고… 하여튼 일을 되게 하려고 정말 여러 가지 애를 썼다. 팀원들도 서로 노력해줬고 다른 분이 제안한 스프린트를 통해 기획의 불확실성이 많이 해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기획 혹은 PM 인력의 중요성을 많은 회사가 간과하고 있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는 고통 속에 많은 부분이 성장한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 덕에 살면서 회의에 가장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의견도 많이 냈고, 그 의견이 반영되는 경험도 해보았으니.
3. 구글 디자인 스프린트를 경험해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프로젝트의 세부 기획이 계속 잡히지 않자, 회사의 동료 개발자분이 구글의 디자인 스프린트를 해보면 어떻냐고 제안해주셨다. 일주일 동안 한 회의실에 모여앉아 아이디어를 내고, 어제 낸 그 아이디어를 오늘 유저에게 테스트해 본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의 방향이 많이 정해진 것은 물론, 이후의 회의와 결정을 내리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스프린트를 통해 얻은 큰 교훈은 ‘빠른 결정이 최선의 결정보다 낫다’는 것, 그리고 ‘실제 피드백을 받기 전까지는 어떤 가정도 무의미하다’라는 것이었다. 또 기획 단계에서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의 글로 또 작성해보려고 한다.
회사 밖에서 🏄🏻♀️
1. TIL 슬랙 모임
내가 작성한 TIL의 예시
IT업계에 종사하는 다양한 직군의 분들과 슬랙을 통해 TIL(Today I Learned) 모임을 함께하고 있다. 25명 정도의 작은 규모인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참여율도 높고 솔직한 이야기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모임이 되었다. TIL뿐만 아니라 업계 뉴스나 커리어, 토이 프로젝트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회사 외에도 매일매일 뭔가를 보고하고 이야기를 나눌 일기장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게 감정적으로도, 생산성 측면에서도 도움이 많이 된다. 배운 것이 없는 것 같던 하루라도 TIL을 쓰려고 되돌아보다 보면 뭐라도 배운 게 있다. 더불어 생각 없이 흘려보낸 하루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효과도 가져다준다. (실제로 TIL이라기보단 일기처럼 쓸 때도 많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모임이다.
2. 운동
매일 운동기록을 올리는 내 인스타그램 계정
바디밸런스
연초에 플라잉 요가를 열심히 하다가, 근력 운동이 충분히 되지 않는다고 느껴서 유소라 선생님의 바디밸런스를 수강하게 되었다. 바디밸런스가 정말 좋았던 건 체형을 교정하는 운동과 근력 운동을 동시에 착실하게 지도해주신다는 점이었다. 이전에는 거북목과 오다리 때문에 회당 12만원씩 내고 도수치료를 받았었는데, 그보다 훨씬 착한 가격으로 내 몸의 문제를 더 세세히 짚어주시고 맞춤형 운동도 가르쳐주셨다. 또 그전까지 20kg 이상의 무게를 들고 운동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24kg의 무게를 들고 데드리프트를 할 수 있다! 이전에 근력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선뜻 운동을 시작하기 어렵거나, 일반 헬스장 PT의 가격과 환경이 부담스러운 분들께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30일 매일 운동 프로젝트
서울 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30일 매일 프로젝트에 운동팀으로 참여해 20일 이상의 참여율을 이루어냈다. 매일 5분이라도 운동을 하고 단체 카톡방에 인증하는 형식인데, 인증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다른 분들이 무척 열심히 하시기도 했고, 오늘은 못 하겠다고 하면 ‘스쿼트 50개라도 하고 올리세요!’라고 채찍질을 해주셔서 더욱 자극이 됐다. 덕분에 500개부터 시작해 처음으로 줄넘기를 1,000개씩 넘어보기도 했다.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도 매일 운동한 기록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 운영 중이다. 매일 이라기보단 2-3일에 한번 운동에 가까워졌지만 궁금한 분들은 구경 오시길!
영감을 주었던 것들 ✨
다른 사람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듣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2019년에도 여러 강연과 수업을 들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뽑자면 다음과 같다.
카카오뱅크 고정희 기획자님 강의
지금은 누구나 쓰고 있는 카카오뱅크의 시작부터 UX적인 혁신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어려운 과정, 그리고 26주 적금처럼 친숙하지만 새로웠던 서비스들이 어떻게 출시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어 매우 좋았다. 특히 고객의 경험, 즉 탁월한 UX에 대한 집념과 이를 관철하는 추진력에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감동했다. 은행권 사람들과 개발자분들이 ‘이 정도면 충분히 좋다’고 말렸을 때도 몇 시간 동안이나 설득해 공인인증서가 없는 최적의 UX를 구현했다고 한다. 다녀온 지 한참 되었지만, 시간이 된다면 글로 정리해보고 싶다.
TECH MEETS STARTUP 2019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창업가들을 위한 강연이었지만 개인적으로 큰 자극을 받았다. 첫 번째로 얻은 모티베이션은 인생에서 ‘회사에 취업한다’는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두 번째로는 보통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가진 고민을 회사라는 큰 스케일에서 똑같이 겪었던 창업자들이 이를 어떻게 극복해냈는지에 대한 인사이트였다. 특히 ‘연쇄 창업가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패널 토크에서 직접 엑싯을 겪은 창업자들의 경험담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어 굉장히 유익했다.
클래스 101 신사임당님 강의
최근 유튜브에서 신사임당님 및 기타 유튜버들의 영상을 인상 깊게 보면서 사이드로 부업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때 마침 클래스 101에서 신사임당님의 스마트 스토어 강의가 열려서 수강하게 되었고, 현재까지는 매우 만족 중이다. 사실 처음에는 ‘일단 들어보고 스마트 스토어 여는 건 나중에 생각해야지~’라는 마음이었는데 어느새 스토어 개설과 개인사업자 등록까지 마쳤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내게는 단순 근로소득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하기 위해 1보를 내디뎠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취이다. (이전과는 마음가짐부터 여러모로 달라진다)
또 너무나 흥미로운 게, 신사임당님이 설명해주는 스토어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스타트업에서 귀에 못 박히도록 듣던 그로스 핵, 그리고 애자일 방법론과 매우 닮아있다. 작게 시작하라, 고객으로부터 구매라는 피드백이 오기 전까지 우린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 피드백이라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품을 넓혀라 등등… 돌아보면 스타트업이라는 환경은 어떤 종류든 간에 사업을 할 때 필요한 많은 것들을 무의식중에 배우기 매우 좋은 환경인데 그걸 내가 자각하거나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판매를 개시하지는 않았지만, 내년에 나와 내 스마트 스토어가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쨘 사업자가 되었습니다
무리를 했습니다 💦
파이썬 공부
한창 주식 투자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나는 파이콘에서 알고리즘 트레이딩 관련한 모 개발자분의 발표를 보고 감명받아 알고리즘 트레이딩 강의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분명 선생님은 초보자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수업은 (당연하게도) 엄청나게 어려웠고, Programmers에서 별도의 파이썬 강의를 수강하며 열심히 따라가려고 했지만 결국 너무 힘들어서 반쯤 포기해버렸다. 실제로 비개발자 수강생임에도 밤새워서 공부를 해와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난 아무래도 그 정도의 근성은 없었던 듯하다. 지금 다시 그때의 메모를 봐도 파이썬 문법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하하. 여기서 얻은 교훈은 ‘내가 잘하는 걸 하자’는 것. 역시 개발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사이드 프로젝트
올해에도 여러 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유난히 잘 끝맺지 못한 게 많았다. 먼저 다른 개발자, 디자이너와 모여 한 달 동안 진행하는 해커톤에 참여했는데, 중간부터 너무 지쳐서 마지막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디자인 퀄리티를 내지 못했다. 지인들과 모여서 앱을 만드는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었는데 다들 일이 바빠지면서 진행을 내년으로 미뤘다. 또 테크 페미에서 KMN톤 준비팀에 들어갔다가 스케줄이 꼬여 행사 당일에 참석하지 못했고, 후반부에 준비 참여도 많이 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일단 많이 참여하고 보면 나중에 다 내게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해 예스맨처럼 이것저것 참여했는데, 내년부터는 내 깜냥에 맞춰서 포기할 건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의 생각들 💭
직장은 직장, 직업은 직업
올해는 유난히 디자이너라는 내 직업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본 한 해였다.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직군 특성상 그 일 자체를 좋아해서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 많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필드다보니 꾸준한 공부도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강연을 찾아다니고, 돈을 내서 관련 수업을 듣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 정도다. 나 또한 어느샌가 부터 나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동일시하고, 디자인 스킬이 개발할 수 있는 내 능력의 전부인 양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는 디자이너라는 내 직업이 나를 구성하는 작은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여태까지 디자인이란 종목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달까? 직장도 마찬가지인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직접 프로덕트를 만드는 만큼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거기에 과몰입하기 쉽다. 냉정하지만 고용인과 피고용인인 나와 회사의 관계에 대해 가끔 상기하면,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직장과 직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깎아 먹지 않도록 이런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건강한 삶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로소득 외의 소득을 만들자
나이를 먹을수록 근로소득에 안주해서는 미래가 불투명하겠단 생각, 그리고 내가 노력한 만큼 100% 내 것으로 돌아오는 무언가를 하고 싶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때문에 제테크와 부업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깨작깨작 건들다 만 것에 가깝다. 내년에는 시간을 더 써서 제대로 진행해보고 싶다. 인생을 설계할 때 나의 미래를 커리어 패스라는 단어에 갇혀서 상상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그 너머를 계속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2019년에는 유난히 배워보고 싶은 것, 도전해보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또 배우는 것마다 새롭게 눈을 뜨는 기분이어서, 설레고 재밌는 게 꼭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10대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와중에 내가 아직 20대라는 것, 그래서 더 배우고 그걸 활용할 시간과 기회가 충분하다는 사실이 참 기뻤다. 이정표 같은 30살이 이제 딱 2년 남았으니 그때까지의 단기 목표를 세우기도 좋다. 2020년에는 이루고 싶은 목표들과 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세워서 실행해보고 싶다.